현재의 공유 가능한 텍스트는 거의 대부분 스크린 속의 기술을 통해, 그리고 기계에 의해 구성되는 과정 속에 있다. 우리가 읽는 수많은 텍스트들의 모습은 특정 테크놀로지 또는 소프트웨어, 그리고 출력 기계에 의해 결정되어 우리 앞에 놓여진다. 그러나 텍스트 아래에 그를 담는 그릇이 존재하며, 그 그릇에 의탁하여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명제는 너무 자주 무시되고는 한다.

Free Document Format에서는 현재의 공유 가능한 텍스트와 문서 형식이 대체 가능함과 동시에 더 나은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유로운 문서와 책을 위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출판 방식과 그 결과물인 문서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고 또 달라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Free Document Format은 지금까지 제작되어 온 다른 전자출판 형식들을 통해 새로운 문서 공유 형식을 만들어 보고, 비평하고, 그 과정을 문서로 기록한다. 텍스트는 또 다시 공유되고, 자유로운 문서에 대한 새로운 질문은 새롭게 흐를 것이다.

들어가는 말

여기 기록되고 전달되려는 하나의 텍스트가 있다. 보편적인 방식으로 타이핑을 통해 작성되었다. 이 텍스트가 다수에게 공유되기 위해서는 대략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누군가 이 텍스트를 서버에 업로드하고 그 위치 좌표(링크)를 공유하여 누구나 스크린을 통해 위치 좌표에 접속해 보도록 하거나, 마찬가지로 스크린 위에서 책의 출력 데이터를 제작한 뒤 복제본을 대량 인쇄하여 물성이 있는 매체를 공유해야 한다.

공유 텍스트기록되고 전달되고자 하는, 즉 공유되고자 하는 텍스트를 뜻하는 용어로 글에서 축약해 사용한다. ‘문서’라는 형식은 익숙한 종이의 이미지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스크린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쇄되어 물질로 손에 남더라도, 그전까지 결국 컴퓨터라는 기계를 통해 디지털상으로 생성된 결과물이다. 달리 말하면, 현재의 공유 가능한 텍스트는 대부분 스크린 너머의 기술과 기계를 통해 구성되는 과정 속에 있다. 우리가 읽는 수많은 텍스트의 모습은 특정 테크놀로지 또는 소프트웨어, 그리고 출력 및 디스플레이 기계에 의해 결정된 채 구현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그러나 텍스트 아래에 그를 담는 그릇이 존재하며, 그 그릇에 의탁하여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명제는 자주 무시된다.

게다가 오늘날의 대부분의 책은 결국 하나의 소프트웨어(프로그램)를 통해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그것도 그를 실제로 사용하는 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원리가 숨겨진 구조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로 말이다. 이 독점 소프트웨어 장치의 설계와 UI는 작업자가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인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마스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닫아버렸기에, 작업자는 도구에서 분리되어 체인의 끝에 배치되고 만다.

Free Document Format에서는 현재의 공유 가능한 텍스트와 문서 형식이 대체 가능함과 동시에 더 나은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이는 문서와 책의 자유를 향한 변화 요구로 이어진다. 출판 방식과 그 결과물인 문서 그리고 포맷형식이나 구성, 형태 등 보다 더 넓은 범위를 포함하는 단어로 사료되어 직역하지 않고 포맷이라는 용어를 유지한다.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우리는 스크린 속을 떠다니는 현재의 문서의 포맷과 포맷을 만드는 방식에 의심을 갖고 질문해야 한다.

실질적인 도구의 사용자임에도 주권을 빼앗긴 사용자들은 어떻게 다시 창작의 자유를 소생시키고 지킬 수 있을까? 자유롭기 위한 노력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도구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자신이 사용하는 기술과 형식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쓸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다른 고민을,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을 따라, Free Document Format은 지금까지 제작되어 온 다른 전자출판 형식들을 통해 새로운 문서 공유 형식을 만들어 보고, 비평하고, 그 과정을 문서로 기록한다. 현재의 독점적 문서 포맷을 벗어난 다양한 문서 형식과 시스템을 탐구하고 또 고안한다. 하지만 가장 큰 목적은 새로운 해결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를 쥐어주는 것이다. 가능성을 향한 텍스트는 또다시 공유되고, 자유로운 문서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흐를 것이다.

상상한 미래

선언문이 작성되었다. 이후의 문서는 그 전과는 같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물었다. 의심하고 자각하기 시작했다.
왜 지금까지는 그러지 못했지?

자유로운 문서는 소프트웨어의, 포맷의, 형태의 번역이 불필요해 누구나 접근 가능한 콘텐츠라는 이상을 이루는 수 있는 그릇이 되었다. 링크로 연결된 공동체,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공용 플랫폼을 만들려는 노력 그리고 유토피아적이며 범언어적인 꿈을 완벽하게 반영하며 상응했다.

종이의 모방이 아닌 디지털 문서, 인쇄물과 디지털을 결합한 판본은 옛 언젠가는 새로웠을 테다. 새롭고 진정한 하나의 문서, 순수한 하이브리드의 꿈이 사람들을 자극하고 불타오르게 했던 갈망의 시기! 하지만 지금은 이미 너무도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모든 이가 이제 문서가 하나의 형식 안에 자리 잡지 않았다는 테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다름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결합이라는 개념도 없다. 텍스트는 무한으로 확장하는 문서 포맷 안에 존재하며, 문서 포맷은 하나이자 무한이다.

한가지 틀에 맞춰지지 않은 채 자유로워진 문서는 형식과 내용이 서로 바라보면서 서로에 맞춰, 서로에 따라 자라났다. 어떤 모습이든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문서는 내용의 완전한 구현이자 그 자체로, 내용이다.

이 모든 것은 그 누구의 독점도, 제한도 없이 구성되었다. 이젠 누구나 어디서든 공동체에 접속해 그 무엇도 설치하지 않고도 문서를 작성하고, 저장하고, 공유할 수 있다. 모든 페이지는 바다 같은 서버 안에서 헤엄치며, 연결되어 있다. 한순간엔 오직 나만이, 다른 한순간엔 모두가 같은 문서를 볼 수 있다. 문서는 모든 형태로의 변환이 가능한 액체와도 같다. 선형적이었다가, 비선형적이었다가, 마치 공기 입자처럼 퍼져 있다가도 또 흐르는 물과 같이 움직인다.

제한되지 않고 모든 형식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자유로운 문서는 수많은 독해를 각자의 방식으로 수용할 수 있게 확장 가능성을 가진다. 선택에 따라 변형되고 확장되는 문서를 통한 적극적 읽기를 통해, 사람들은 진정으로 문서와 관계를 맺고 텍스트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며 변화하는 역동적 존재여수현. (2020). 읽기의 리좀(rhizome)적 특성 고찰. 한국초등교육, 31(1), 233-243.가 되었다. 이는 텍스트와 문서에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래는 끊임없는 새로운 생성을 맞이한다.

글자를 읽는 방법 또한 셀 수 없다. 어떤 이는 문서를 빠르게 한 장씩 틀어 흐르는 영상의 모습으로 만들어 보다가, 눈이 아파지면 눈을 감고 텍스트를 틀어 귀로 듣는다. 다른 이는 인쇄해서 옷으로 지어 입다가, 가상공간 안에 있는 자신의 집 소파 위에 앉아 인쇄된 신문 포맷에 담긴 텍스트를 읽기도 하고, 갑자기 그것이 지겨워지면 아예 집 전체의 벽지를 점자 텍스트로 발라서 만지며 읽기도 했다.

읽는 사람에 의해 조작되고 또 새로운 이야기가 생기는 세계. 우리의 문서는 타자를 인식으로 환원하지 않으며 환대하는 다중체이다. 그것은 안에 있으며 동시에 바깥에 있다. 어디에나 있는 동시에 아무 데도 없으며, 언제나 있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링크로 서로 아름답게 연결된 문서들, 문서 간의 경계, 작가와 독자 간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리좀의 형태처럼 단일체가 아닌 잔뿌리의 형태가 되어 각자의 외부를, 확장을 지향한다. 4차원 공간에서 모든 방향으로 동시 확장하고 수축하며 촘촘하게 연결된 뿌리로 이어진 글자들의 세계다.

끈질기게 환상으로 삼던 미래가 다가왔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액체는 상상력의 뿌리를 따라 계속해서 흐른다.

선언문

미래의 문서 포맷은 다음과 같은 방식이어야 한다.

제한되지 않고 모든 형식으로, 결과적으로 모든 매체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

확장은 하나의 텍스트에서 출발되어야 한다.

개인이 방식을 가꾸고 변경해나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즉, 오픈소스이고 또 오픈소스로 구성되어야 한다.

대안이 아닌, 새로운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인지된 제약이 잠재력을 제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정보를 공유하려는 욕구이라는 문서의 가장 중요한 목적에 가장 부합하려는 형태여야 한다.

문서 형식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잘 읽히고자 하는 용도에 가장 부합하려는 형태여야 한다.

내용이 형식에, 형식이 내용에, 그 모든 것이 기술과 소프트웨어에 구속되지 않아야 한다.

무엇으로부터든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로운 문서에 대한 이론

지금 당장의 현실 속 자유로운 문서란 대체 무엇인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잡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지금까지의 주 문서 공유 포맷인 PDF를 분석하고 해석해보고자 한다. 지금 문서 방식의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들춰보자. 본질적인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형식이 자리 잡은 이유와, 큰 개편 없이 유지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문서 포맷이 현재까지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 앞으로 무엇이 되거나 되지 않을 수 있는지 살펴본다.

그 후 자유로운 문서에 대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이론들을 들여다본다. 현재의 문서 포맷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하지만, 앞으로의 새로운 문서 형식이 갖출 수 있는 특성과 기능이 있을까? 아니면 이미 그런 것들은 존재했고 논의되어 왔지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단 하나의 문서

뿌리의 재전유

DTP는 탁상 출판 Desktop Publishing의 약자로, 개인 컴퓨터로 단행본이나 사전 등의 출판물을 디자인하는 작업을 말한다. 현대의 일반적인 탁상 출판은 워드 Microsoft Word(.doc) 같은 WYSIWYG 워드 프로세서/텍스트 편집기를 통해 글을 작성하고, 레이아웃 프로그램인 인디자인 InDesign으로 편집 및 디자인한 후 PDF로 내보낸 뒤 그를 인쇄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현재로서는 제조 과정에서든 유통 과정에서든 디지털 개입 없이 제작된 문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기술적 매개를 통해 우리의 감각에 도달하는 거의 모든 것은 디지털 ‘통과’를 거친다. 당신은 이 문서를 촉감과 함께 도달하는 인쇄본으로 읽고 있을 수 있지만, 이 문서를 쓰고 편집하는 모든 과정은 스크린 너머 디지털 속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문서’라는 형식과 용어 는 공유되는 텍스트에 너무도 익숙한 사각형 종이의 이미지를 부여하기에, 문서 및 책과 우리의 읽기 행위의 디지털 성질은 쉽게 무시된다.

문서가 디지털 환경에서 제작된다고 해서 디지털 문서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애초에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지털 문서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책과 디지털을 대척점의 양 끝에 두고 비교하는 일은 이제는 너무나도 지겨운 일이다. 이런 비교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디지털 문서가 생긴다고 해서 책이 사라지지 않고, 그렇다고 디지털 문서가 다시 소멸하지도 않을 것이다.디지털으로 생산되는 문서를 결국 인쇄하는, 책 물성화 방식을 유지하는 이유가 궁금해진다면, 그 의문에 대해서는 적어 나열하기에도 너무 많은 이유가 있다. 현대의 어떤 웹 대안도 아름답게 제작되고 인쇄된 책을 들고 있을 때 얻는 즉각적인 신뢰감과 소중함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이 우선이냐, 디지털 문서가 우선이냐가 아닌, 이분법적인 구분 자체가 문제이다. 디지털 텍스트, 문서를 인쇄판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고착 관념은 이제 버려야 한다. 둘은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난 두 개의 가지일 뿐이다.

PDF ICONS

하이브리드 이후

두 개의 가지는 서로 다른 특성과 장점을 갖고 있기에, 요즘의 출판물은 일반적으로 모두를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하나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두 가지 형식을 다 제작한다. 그리고 그에서 조금 벗어나고자 하는, 더 발전한 상상력을 가진 문서는 양극의 특성을 혼합한 문서 포맷을 만들려는 노력을 해왔다. 알레산드로 루도비코는 디지털 프린트 이후의 출판에 대해 논의하는 그의 저서 《포스트 디지털 프린트》에서 앞으로 디지털과 인쇄물이 결합한, ‘하이브리드’라고 불리는 혼합물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본질적, 태생적으로 연결된 문서의 형식들은 더욱더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새롭게 혼합된 형태를 만들어 낼 것이고, 그를 더 이상 ‘인쇄물’ 또는 ‘전자 출판물’로 분명하게 분류할 수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혼합 형태의 출판물이 도래할 것이라고 보았다. 루도비코는 2012년 책에서 하나의 예시로 음악이나 비디오 샘플링과 유사한 형태로 맞춤형 콘텐츠(모음집)를 만들 수 있는 ‘프린트 샘플링’을 상상하기도 했다. 알레산드로 루도비코, Post Digital Print (미디어버스, 2017), p.155 지금의 E-book 리더기나 Web2Print 시스템들을 본다면, 당대의 상상은 이미 현실이자 현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더해서 정말로 모두가 둘은 다른 수목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연결된 가지라는 것, 즉 하나의 나무라는 인식을 공유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하이브리드’를 초월한 그다음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흐르는 문서

유리 아래의 종이

Portable Document Format, 이하 PDF는 미국 어도비 시스템즈 Adobe Systems에서 만든 문서 파일 포맷(유형)이다. 1993년 어도비사는 PDF 1.0 버전과 Acrobat 1.0 버전을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PDF는 대항 세력이 없는, 온라인 상의 인쇄용 문서의 실질적 산업 표준이 되었다. PDF의 장점으로는 대부분의 문서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고, 암호화 및 압축 기술을 통해 내용의 변조가 어려우며, 사용권을 다양하게 부여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지원 가능하다는 점 등이 있다.

PDF의 본질은 형태를 ‘그대로’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무결성에서 오는, 원본과 동일하다는 믿음의 감각. 사진과 동일한 미학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무결성을 가독성이라는 렌즈로 바라본다면 PDF를 보는 시선이 크게 달라진다. Acrobat을 필두로 한 PDF 파일은 사실 조판용 텍스트를 완벽하게 나타내는 일종의 데이터 덩어리이다. 이 데이터의 구조에 위계는 없다. 그러나 어도비는 이 조판 덩어리가 문서를 저장하고 읽는 데 가장 적합한 형식이라고 전 세계를 설득하면서 놀라운 맥락 전환을 성공시켰다. 마치 사진 같이 정지된 PDF는 읽기에 매우 재바르지 못한데다 주석을 달 수 없는 ‘유리 아래 종이’ Ted Nelson, Geeks Bearing Gift: How the computer world got this way (2008), p.127 의 완벽한 시뮬레이터이다. 얻을 것 하나 없이, 종이는 유리 아래에 갇혀 종이 자체의 힘과 매력을 잃는다. 결국 사람들은 종이 형식의 PDF 파일을 다시 현실의, 유리 아래 갇히지 않은 종이 위에 출력하여 텍스트를 읽는 방식을 선택한다. 읽기 위해 인쇄하는게 아닌, 반드시 인쇄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액체 레이아웃

정보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쓰는 에드워드 R. Tufte는 물리적인 세계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사이의 부조화를 인식하며 웹 디자인 상황에서 직면하는 문제를 설명하고자 했다. “우리는 3차원 공간의 지각 세계를 매일 탐색하고 수학적으로 쉽게 더 높은 차원의 영역에 대해 때때로 추론하지만, 우리의 정보 디스플레이에 묘사된 세계는 종이와 비디오 화면의 끝없는 평지의 2차원성에 사로잡혀 있다.” Dan Rubin, “Off Page”, Back Office 3. http://www.revue-backoffice.com/en/issues/03-writing-the-screen/02_rubin

웹이 인쇄물을 대체하기 위해 존재한 적은 없다. 물론 웹의 이 모든 과도기적 형상이 진화적인 단계였기에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지만, 웹이 몇 가지 장식적인 부가 기능을 갖는 디지털로 분산된 물질계의 클론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앞서 전자 문서 형식인 PDF가 문서 공유 포맷으로서 실질적 산업 표준임을 이야기했다. 사실 PDF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넓은 세계로 상상되는 웹 자체도 결국 낱장의 사각형인 ‘웹 페이지’로 치환하여 이해한다. 월드 와이드 웹 WWW 또한 하나의 페이지의 묶음, 거대한 코덱스와 같은 개념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페이지 개념은 그 역사상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눈치챌 새도 없이 본인의 역사와 의미를 웹 상으로 침투시켰고, 이는 우리의 전체 사고 과정에 그의 의지를 부과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페이지 개념을 웹에 매핑하는 것은 창작자가 내용을 설계하고, 만들고, 편집하고, 큐레이션 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현재의 웹에서 페이지 패러다임을 털어내고 우리의 물리적인 세계와 같은 문서 지각 세계를 구현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 당장 현재의 페이지 개념을 벗어날 수 없다면, 우선적으로 웹에서 페이지의 경계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방법을 새롭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댄 루빈은 기존 활판 인쇄 프로세스의 고정형 블록과 다르게 가능한 크기, 예를 들어 종이 또는 웹 브라우저 창의 치수에 따라 레이아웃이 재조정되는 디지털 컴포지션을 설명하며 액체 레이아웃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액체 레이아웃에서는 페이지 내부에서 다시 페이지를 재현해 경계를 매기고, 경계에 글을 다시 짜 맞춰 가두는 익숙한 방식을 버린다. 고정된 레이아웃에 갇혀 꼼짝할 수 없는 글과 달리, 액체 레이아웃에서 글은 물처럼 흐르며 요건에 따라, 선택에 맞춰 자유롭게 변화한다. 글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수많은 매체에 맞춰, 문서의 가장 중한 목적인 정보 공유와, 문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가독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로 변화한다. 액체처럼 흐르는 레이아웃은 상상 가능한 미래이자 현실이다. 이렇게 문장을, 문단을, 문서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이 찾아오면 앞으로의 문서는 어떻게 변화할까? 종이 밖으로 흐르는 문서는 멀리멀리 떠나, 2차원의 경계까지 넘을 수 있을까?

어도비의 유체화

2020년 어도비는 아크로뱃 리더기에 리퀴드 모드 Liquid Mode라는 새로운 읽기 모드를 추가했다. PDF 문서를 AI가 자동으로 뜯어 재배치해 작은 화면에서 흐르는 문서로 편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기능으로, 자체 AI인 Sensi를 사용했다. 어도비 소프트웨어 내부에서도 이러한 문서에 동일하게 흐르는 문서, 액화 Liquid라는 비유를 사용한 것은 해당 비유가 유용하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모드를 실행하면 자동으로 하이퍼링크로 작동하는 목차가 생성되며,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글자 크기, 자간과 행간을 조정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기능 또한 적용되었다.

고정형 페이지를 기반으로 한 PDF를 읽고 다루는 것이 제 능력이자 목적인 Acrobat Reader 내부에 이런 액화 문서 형식을 강조하는, 즉 원래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던 문서를 강제로 개조하는 형식을 통해서라도 이런 텍스트 포맷을 추가한 이유는 자명하다. PDF 자신도 본인이 최선의 모습이 아니며, 더 나은 읽기 방식을 제공하지 못함을 파악하고 있다는 일종의 증명이다.

어도비는 2022년 1월 14일 지원 페이지에 ‘유동적 레이아웃 및 대체 레이아웃’이라는 가이드를 올렸다. 한국어 가이드는 2022년 1월 14일, 영어 버전은 2021년 7월 23에 작성되었다. ‘[대체 레이아웃] 및 [유동적 레이아웃] 페이지 규칙은 유연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여러 가지 페이지 크기, 방향 또는 종횡비를 설계할 수 있고, 여러 형식 및 크기로 출판할 경우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디자인 전략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인디자인은 채택된 전략에서 비용과 제어의 균형을 조절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개선 기능을 제공한다’고 설명하지만, 바로 아래 ‘참고’ 표시와 함께 ‘자동 유동적 레이아웃 기반 출판은 호환 뷰어 기술이 없기 때문에 아직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어두었다.독점 유료 소프트웨어의 안타까운 점이다. 기계 및 기술 회사가 상품을 제작하고 공개하기 전까지는 (사실 그 후에도) 작업자는 생산 라인의 끝에서 노동하며, 발전이나 호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당장 자각한 현실이 이렇다고 해도,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것은 긍정적인 시작점일 테다. 하지만 PDF의 본성은 아주 강력하기에 이러한 변화는 두 가지 질문을 마주해야 한다.

무결성의 존엄은 어디로 가는가?
달걀보다 닭이 먼저야 하는 것 아닌가?

무결성이 지켜져야 하는 분야도 분명히 있다. 서명이 필요한 문서, 공식적인 폼과 일치성이 필요한 문서, 변별을 위해 동일한 형태와 크기로 공유되어야 하는 문서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서들은 현재의 정적인 고정 포맷에 만족하며, 그 단단함에 기반을 두고 공유된다.그런데 어도비와 어도비의 액화 모드는 이러한 고민을 어디까지 진출시켰을까? 우선 현재 어도비 크레이티브 클라우드 Creative Cloud 프로그램으로 PDF를 만드는 경우, 이 ‘액화 모드’로 문서 보기 모드가 전환될 수 있는 것의 허락 여부를 묻는 경우는 없다. 보기를 달리하면 이는 굉장히 날카로운 갈등의 시작이다. 현재 제작되고 공유되는 수많은 PDF는 고유한 제작 및 데이터 처리 방식에 따라 제작자가 설정한 위계와 가이드라인이 드러나지 않거나 아예 생성되지 못한 문서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문서가 변환되어 보여질 수 있다. 그렇다면 믿었던 것에 대한 상실은 오히려 신뢰의 농도만큼 큰 배신의 충격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근원에 대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해결방식의 순차에 의문이 생긴다. 문서를 바꾸기 위해서 문서 제작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르게 제작된 문서를 강제로 뜯어 해체해서 재조립하는 과정을 어떻게 납득해야 하는가? 부가적인 업데이트가 명확한 목적지를 가리키는 지금, 특정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변화나 근본적인 시스템을 넘어 우리의 인지 방식의 수정이 요구된다. 아주 바닥부터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어렵지 않다면, 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겠는가?

흐르기 시작한 후에는

유리 아래 종이의 사각 틀에서 벗어나 흐르기 시작했을 때, 고려할 것들이 생긴다. 대부분의 디지털 읽기 경험에서는 종이책을 읽을 때와 같은 본능적이고 체험적인 ‘물리적’ 단서를 얻지 못한다. 종이책을 읽을 때, 우리는 산책할 때 도시를 매핑하는 것처럼 각 스프레드(페이지)의 물리적 공간을 매핑한다. 예를 들면, 누구나 가장 좋아하는 인용문이 책의 4분의 3쯤의 왼쪽 상단에 있었다 정도의 구체적인 정보를 감각으로 기억할 수 있다.Arthur Attwell, “Why you love reading on paper (and what it means for ebooks)”, Electric Book Works, 2021년 9월 21일, https://electricbookworks.com/thinking/reading-on-paper/

하지만 유리를 통해 보는 평평한 화면에는 지형이 없기 때문에, 책을 매핑하기 위한 자동반사적인 노력은 고난을 겪는다. 지금 나의 읽기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페이지, 페이지네이션이 없는 문서에는 ‘읽는 감각’을 어떻게 형성해야 할까? 새로운 읽기 감각은 어떻게 건설되고 디자인되어야 할까? 이러한 상상을 시작할 수 있는 첫 단계로 마커가 있다. 물성이 제거된 유리 아래의 문서, 페이지네이션을 초월한 스크롤과 함께하는 문서를 위해 마커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원리와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덱스 시스템 또한 좋은 예시이다. 인덱스 생성의 판도를 바꾸는 사고 접근이 필요하다. 좋은 색인은 매우 유용하다. 잘 만들어진 색인은 개념의 분류 체계, 즉 책에 있는 아이디어의 지도가 되어준다.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는 위치에 하이퍼링크를 걸어서 본문과 인덱스 사이의 연결을 생성한다면 막대한 노동을 요구했던 인덱스 시스템을 활성할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댄 루빈은 질문을 다시 시초의 상상력으로 회귀시키고자 한다.

“무한 캔버스(Scott McCloud의 페이지가 아닌 창으로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 영역에 대한 개념)가 콘텐츠 디자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접근 방식으로 받아들여졌을까? [...] 우리는 경험, 감성 디자인, 콘텐츠 전략, 시각적 문법, 심리학, 사용성 및 표준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지만,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일하는 방식, 우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더 큰 개념을 생각하는 방식에 도전하지 않는다. [...] 우리의 책임은 웹 디자인의 고유한 어휘에서 페이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이해하는 웹 디자인의 의미가 가능성의 우주에서 단지 하나의 순간에 불과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실제로 가능성의 표면을 훑어보고 있을 뿐이다.

연결된 문서

하이퍼텍스트: 표류하고, 부유하고, 수증기가 되어

‘텍스트의 선형성을 항구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컴퓨터 자체가 아니라, 추상적인 디지털 공간에서 기능적이고 완전히 새로운 텍스트 구조, 즉 하이퍼텍스트를 생성해내는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이다.’

링크를 클릭해서 다른 글이나 이미지로 옮겨갈 수 있게 만든 문서를 '하이퍼텍스트'라 부른다. 웹 문서의 동의어가 된 하이퍼텍스트는 정보의 추가제공과 문서 간의 상호참조를 돕기 위해 고안된 기술이다. 웹은 처음부터 문서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팀 버너스 리가 정보 공유가 용이하도록 월드 와이드 웹WWW을 고안했을 때, 그 정보의 형식은 하이퍼텍스트 문서였다.

주제에 관한 Ted의 1965년 논문에서 가정된 하이퍼텍스트의 파노라마 보기 (링크)

종이책의 구성은 수 세기를 거치며 체계화되었다. 문장은 논리적으로 결합하여 문단을 구성하고, 문단은 서론, 본론, 결론의 형태로 완결된 구조를 갖는다. 추가 정보는 주석으로 처리해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한다. 글은 왼쪽이나 오른쪽 어느 한 방향에서 시작해 반대편에서 마무리되는 방향성 또는 선형성을 갖는다.

그런데 하이퍼텍스트는 이런 선형성을 파괴한다. 하이퍼텍스트는 근본적으로 종이로 된 책은 짤/짜일 수 없는 텍스트들의 짜임으로 이루어진 상호텍스트이다. 인쇄를 통해 효과적으로 재현될 수 없는, 처음으로 등장한 디지털 베이스의 고유한 성질이다. 문학 평론가들은 하이퍼텍스트의 특성과 후기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사성을 들며 몇 가지 특성을 지적한다.김재국, 사이버리즘과 사이버 소설 (2001), 국학자료원.

  1. 표상 혹은 재현 체계의 유동성과 부정확성
  2. 전위적 실험성과 일탈성, 참여 행위의 중요성
  3. 파편화 현상 및 임의성과 유희성
  4. 위계적 질서의 재편성과 주변부의 권력화
  5. 비종결성과 불확정성
  6. 장르의 융합과 확산

개별 몸체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하이퍼텍스트는 무한하게 탈중심화할 수 있는 동시에 재중심화할 수 있다. 정보끼리의 연결 속에서, 표류하는 문서가 되어 만나고 연결되는 것. 하이퍼텍스트에서의 중심은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기능으로 존재한다. 접속은 두 항이 등가적으로 만나서 제3의 것, 새로운 무언가를 생성함을 뜻한다. 접속에는 어떤 귀결점도 없고, 호오의 선별도 없다. 링크로 서로 아름답게 연결된 문서들은 리좀의 잔뿌리의 형태가 되어 각자의 외부를, 확장을 지향하며 이야기를 만든다. 이는 우리의 ‘읽는 방법’을 급진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바꿀 정립이다.

디지털 텍스트의 주요 기능은 표 또는 목차, 주석, 상호 참조, 책갈피 또는 기타 리소스 여부와 관계없이 결국 하이퍼링크이다. 사실 목차, 주석, 책갈피 등 모든 것은 결국 하이퍼링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큰 섹션, 작은 섹션의 구분 없이 단락, 페이지에 링크를 걸고 연결할 수 있고, 더욱 재미있게 서로 간에 링크를 만들 수도 있다. 소스 하나에서 이동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뿐이지만 동일한 대상으로 이동하는 소스는 여러 개일 수 있다. 이를 이용해서 정보의 그물망을 만들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여전히 시초에 상상했던 아찔하고 독특한 방식의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문서에 접목하지 못했다. 하이퍼텍스트는 아직 우리의 읽기 패러다임을 바꾸지는 못하였지만, 하이퍼텍스트를 처음으로 고안한 테드 넬슨이 이야기했듯 ‘컴퓨터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인간의 자유’라는 가치관은 지속되어야 한다.

대체 텍스트: 같이 읽기 위해

대체 텍스트Alt-Text는 웹사이트에 내장된 텍스트 설명 시스템으로 시각 장애인, 저시력 또는 특정 인지 장애가 있는 사람이 시각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시각 장애인은 종종 화면 판독기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접근한다. 화면 판독기는 화면의 텍스트를 합성 음성 또는 새로 고칠 수 있는 점자 디스플레이로 출력한다. 스크린 리더는 탐색 표시줄의 옵션을 읽은 다음 제목, 단락 순으로 읽어 간다. 이미지를 만나면 이미지는 ‘읽을’ 수 없는데, 대신 코드에 포함된 이미지의 관련 설명인 ‘대체 텍스트’를 찾아 읽어준다. 하이퍼링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보이지 않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대체 텍스트가 포함되어야 한다. 대체 텍스트는 이렇게 하나의 문서에 대한 비시각적 대안으로 작동한다.

이런 요청은 새로운 상상력과 창작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Alt-text as poetry 프로젝트가 있다. Alt-Text as Poetry는 아티스트 Bojana Coklyat와 Shannon Finnegan의 협업으로, ‘최소한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달갑지 않은 부담으로 종종 무시되는’ 대체 텍스트에 어떻게 신중하고 창의적으로 접근할지를 질문하는 프로젝트이다. 프로젝트는 워크숍을 통해 다 같이 모여 대체 텍스트를 일종의 시로 재구성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쓰기 연습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은 이렇게 그동안 간과되던 ‘대체’ 텍스트를 쓰는 경험이 새로운 창작이자 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Alt-Text as Poetry Workbook, https://alt-text-as-poetry.net/

문서의 구성 또한 프로젝트의 강령을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작가들이 직접 녹음한 인사말이 음성으로 첨부되었고, 전체 문서는 웹사이트에 더해 오디오북을 포함한 매우 다양한 확장자로 배포되었다. 또한 장치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용자가 발견할 수 있도록 여러 보기를 제공하고, 우측에 항상 크게 목차와 앵커를 배치해 섹션에서 섹션으로 빠르게, 비선형적으로 이동할 수 있게 했다. 대체 텍스트 같은 대안 방식에 더해, 정보의 위계 설정, 시각적인 구조를 통해서도 문서의 접근성을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체 텍스트는 문서를 더 쉽게 접근 및 이용할 수 있는 문서로 만들어 준다. 선택지의 확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체 텍스트도 웹 접근성에 대한 고려 방법 중 극히 일부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문서의 접근 가능성은 작가, 편집자, 결과적으로 생산자로서 기존의 틀과 규정에 갇히거나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사항이다.

자유를 위한 문서

구조를 따라 텍스트를 흐르게 함으로써, 디자인 과정을 해방한다.‘결과적으로 디지털 출판의 잠재력은 해방 담론과 연결되며, 기존의 출판 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예술적 자율성을 가능케 한다. 일찍이 1990년대 말부터 자가출판 예술가들은 인쇄출판물을 대체하는 디지털의 출판의 발전을 원치 않는 기존의 한계들로부터 벗어나 더 자율적으로 작업할 기회로 여겼다.’, no-isbn, p.329 웹의 논리는 진정으로 매력적이다. 구조와 형식이 구별되고 형식이 소프트웨어에 종속되지 않는다. 특정 도구에 의존하지 않은 문서 생성, 수정, 공유, 개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 스스로가 기술에서 누락되지 않아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기술에 접근하고 소프트웨어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욕구를 통해 도구는 민주화되고, 출판 관행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원한다면

현대의 일반적인 탁상 출판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같은 WYSIWYG 워드 프로세서/텍스트 편집기로 작성되어 인디자인으로 편집 및 디자인 된 후 PDF로 내보내져 인쇄된다고 앞서 언급하였다. 위지윅WYSIWYG는 ‘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의 약자로, 데스크탑 출판에서 우리가 갖게 될 에디션이 워크스테이션의 비주얼에 표시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함을 의미한다. 위지윅은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 미리 보기를 통해 인라인으로 텍스트를 직접 작성 하고 스타일을 지정하는 현재 텍스트 편집 응용 프로그램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다.위지윅에 대한 비판적인 설명,‘From Word to Markdown to InDesign’, Wouter Soudan. http://rhythmus.be/md2indd/#fn4 마치 카메라로 촬영된 이미지처럼, 단 하나의 인쇄된(것만 같은) 버전이 생성된다. PDF 내 인쇄의 뿌리는 너무도 깊어 우리는 한계에서 벗어나기를 생각할 수 조차 없다.

전자책 및 웹 사이트로 변환하는 것, 즉 다른 매체에서 보이거나 다른 읽기 방식을 통해서 보여야 하는 경우 위와 같은 방식을 따른다면 새로운 ‘이미지’를 완전히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구조화된 데이터가 아니라 낱장의 종이가 남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편한 과정임을 알지만 페이지마다 마치 바느질 같은 공예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툴에서 다른 방식은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유리 아래 종이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며, 거기선 사용자가 (자유로운 문서 세계에선 필수적인) 서식과 구조를 구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인터페이스 때문이다. 위지윅에서도 수동으로 서식을 적용하는 대신 스타일 정의를 사용하여 구조화된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지만, 그러한 가능성이 말소된 듯한 UI만이 남아있을 뿐이며, 서식과 구조는 실제로 처리및 공유되는 데이터로 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PDF 생성 이후에 그를 (자동화된 읽기 시스템을 통해) 억지로 뜯어 재구성 혹은 변환해야 한다. 결국 인디자인에서 책을 만들고 전자책 및 웹 사이트로 변환하는 것은 제아무리 경험 많은 훌륭한 조판자라도 피를 흘리고 파산하게 만드는 험난한 여정이 될 뿐이다.

변화하고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Adobe의 추가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Microsoft Word 및 인디자인을 함께 사용하여 PDF 형식의 ‘대화형’ 출판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를 EPUB 혹은 HTML로 자동 변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일부 대화형 레이어로 업그레이드된 정적 인디자인 문서이며, 여전히 디지털 문서 포맷의 가능성에 비해 너무도 제한된 버전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 인디자인에서 PDF에 구조를 추가하는 기능 또한 업데이트되었다.

Acrobat 9 태그 탭의 논리 구조 트리 (링크)

Indesign 내의 [Adobe PDF 내보내기] 대화 상자의 [일반] 영역에서 [태그 있는 PDF 만들기] 옵션을 선택하여 Adobe PDF를 내보내는 경우, 내보낸 페이지에 내용을 설명하고 헤드라인, 스토리, 그림 등의 페이지 항목을 식별하는 일련의 구조 태그가 자동으로 첨부됩니다. 문서를 내보내기 전에 태그를 추가로 지정하거나 기존 태그를 보다 자세하게 지정하려면 InDesign의 [태그] 패널을 사용합니다.
InDesign 문서를 내보내기 전에 태그를 추가함으로써 Adobe PDF 문서의 액세서빌러티와 재사용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PDF 문서에 태그가 없는 경우 Adobe Reader 또는 Acrobat에서 사용자가 문서를 읽거나 리플로우하면 태그가 자동으로 문서에 첨부될 수 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문서를 PDF로 내보내기 전에 태그를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습니다.

다르게 설명하거나 강조할 필요도 없이,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액체 레이아웃의 장점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단순히 유연하게 잘 보이는 문서가 아닌, 다양한 활용성을 갖고 명확하게 포지셔닝 된 정확하고 정밀한 문서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구조화된 문서는 대체 텍스트, 커스터마이징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옵션을 열어준다.

우리는 페이지 중심의 책 인쇄 문화에서 탈피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해해야 한다. 유리 아래의 종이를 벗어난 액체 레이아웃에서 다시 사고를 시작해야 한다. 이는 디자인과 형식의 위치를 재인식하고 전복하도록 이끈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용자가 장치를 정하고 선택하는 상황에서, 장치마다 재설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치에서 같은 층위와 구조를 통해 잘 읽을 수 있게 하는 구조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구조를 사용하여 콘텐츠를 수집하고 그를 구조화하는 도구를 만든다. 맥락은 구조가 되고, 구조는 맥락이 된다. 책 전체가 나무처럼 줄기, 가지, 잎사귀로 이루어지듯 책의 모든 기능을 계층 구조에 배치한다. 투자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은 좋은 금형을 설계하고 만드는 데 쓰는 것이다.

전자적으로 바르게 작성되고 편집된 문서는 하나의 글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무한히 사용하고 재사용할 수 있다. 더 쉬운 방식은 전혀 아니다. 동일한 콘텐츠가 다양한 형식과 장치에서 사용되기에 체계는 더욱 명확하고 날카로워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에는 잠재적인 노력 및 편집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수행되어야 할 노력이자 고민일 것이다.

스스로 자유를 찾아야 해

모든 책이 결국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제작되는 현재의 시스템은 누가 봐도 기형적이다. 마치 전 세계의 사람이 모두 같은 연필과 노트를 사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우리는 그 연필과 노트가 어떤 방식으로 제작되는지, 그것이 어떤 원리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수행되고 있는 출판 노동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작업자는 일하는 기계 체인의 전산화와 함께 작업을 위한 실행적인 노하우와 분리되었고, 그 도구(및 기계)는 출판사 밖에서 제삼자에 의해 설계되고 숙달된다. 인쇄 공장에서 작업자는 기계를 구상하고, 만들고, 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지윅 인터페이스를 거치면서, 장치의 설계와 UI는 작업자(디자이너)가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인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마스터할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작업자는 도구에서 분리되어 체인의 끝에 배치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창작의 자유를 계속 부여받을 수 있을까?Morgane Velut, “Éditer ensemble: renouveler l’organisation technique et sociale de la chaîne éditoriale”, 2021, http://morganevelut.fr/editer-ensemble/

출판 체인에서 PDF에서 EPUB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식을 동시에 생성하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변화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올바르게 수행하기에 단일 소프트웨어는 신뢰할 수 없다. 품질이 좋지 않고, 도구 의존도가 너무 높고, 기술적 부채가 크다는 대략적인 세 가지 단점이 지금의 일반적인 독점 소프트웨어 아래에서 모두 발생하고 있다.

사용에서의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이 자유는 스스로 도구를 다룰 수 있는 것, 스스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오픈 소스의 중요한 특징은 우리가 소프트웨어를 열어 수정한 뒤 새롭게 다시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오픈 소스를 사용하고 그를 이용해서 새로운 시스템과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다시 오픈 소스 커뮤니티 및 운동을 확산하고 활발하게 만든다. 또한 진정으로 자유로운 문서는 그 자체의 얽매이지 않는 태도에 더해, 무료이기도 하다. 제품이나 서비스 제공에 비용을 받지 않는 것. 자본, 기업, 시스템의 제한과 한계 아래 존재하지 않는 것. 무료는 자유롭다는 말과 상응한다.

공유되는 문서는 공유하는 것, 즉 보여주는 자유도 필요하다. 현재의 편집 체인은 일종의 피라미드, 수직 구조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작품의 구상부터 배포까지 작품을 통제할 수 있는 출판사가 있다. 출판되어야 할 것과 출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리하는 사람, 출판의 방식과 형식을 규정하는 사람의 역할과 권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웹 환경은 대형 상업 출판사와 달리 출판을 위한 완전한 독립 플랫폼 및 환경이 돼주었다. 웹은 공유에 있어 자유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료이고, 즉각적인 개방&분산형(immediate, open, distributed) 실시간 게시 플랫폼이 된다.

민주화! 문서를 만드는 도구와 그를 보여주는 도구(플랫폼, 혹은 웹)의 민주화는 자유로운 문서 형식의 해결점이, 열린 출판 시스템은 발행인에게 편집 프로덕션 권한이 중앙 집중화되는 문제의 해결점이 되어 줄 것이다. 이 민주화가 앞으로 생산될 문서들, 편집 및 디자인 작업 노동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